OWCS 아시아 결승 역전극 (배경, 오아시스 분석, 챔피언스클래시)
해설진이 "라쿤이 이겼다"고 선언한 순간, 정말로 경기가 끝났을까요? 저는 그날 방송을 보면서 솔직히 제타디비전이 여기서 지는구나 싶었습니다. 99%에 5개의 궁극기를 챙긴 크레이지라쿤 앞에서 역전이 가능하다고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겁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달랐습니다.

0대 2에서 시작된 전략 변환의 배경
OWCS 아시아 스테이지 1 결승은 처음부터 제타디비전에게 불리한 구도로 흘렀습니다. 크레이지라쿤이 마우가·리퍼 조합, 그리고 양바스 조합까지 모두 승리하며 2대 0을 선점했고, 전승 기록을 유지하던 제타디비전의 블리자드 월드마저 무너졌습니다.
여기서 제타디비전이 꺼낸 카드가 포킹(Poking) 조합이었습니다. 포킹이란 근접 교전 없이 원거리에서 지속적으로 피해를 누적해 상대 체력과 스킬을 소모시키는 전술로, 바스티온과 일리아리를 핵심으로 하는 뒷라인 중심 운영입니다. 이 조합은 양바스 메타가 오기 전에 제타디비전이 가장 자신 있게 구사하던 방식이었고, 제가 직접 경기를 보면서도 "아, 저게 나올 줄은 몰랐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하바나 맵은 시야 거리가 길고 엄폐물 간격이 넓어 포킹에 최적화된 구조입니다. 바이올렛 선수의 일리아리 궁극기가 결정적인 순간마다 대박을 터뜨리면서 하바나를 가져왔고, 이어 루나사피에서도 같은 조합을 꺼내 크레이지라쿤의 루시우·키리코 구도를 격파했습니다. 이 시즌 한 번도 루나사피에서 포킹 조합을 쓴 적 없던 제타디비전이었기에 라쿤도 전혀 대비가 되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이 경기에서 전략 선택의 핵심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맵 특성을 읽은 조합 전환: 하바나의 긴 시야선을 포킹에 활용
- 메타 역전: 양바스 전성기에도 전통 포킹으로 카운터를 침
- 상대 허를 찌른 루나사피 포킹: 전례 없던 선택으로 심리적 기습 성공
오아시스 도심 6세트, 99%에서 일어난 일
이 경기에서 제가 가장 오래 기억에 남을 장면은 6세트 오아시스 도심입니다. 크레이지라쿤은 비질란테 선수의 키리코를 중심으로 여우길(수리의 여신 키리코 궁극기)을 활용한 마우가·리퍼 조합을 구사했습니다. 여기서 여우길이란 키리코의 궁극기로, 발동 범위 내 아군 전원에게 일정 시간 동안 무적에 가까운 생존력을 부여하는 기술입니다. 마우가·리퍼 조합에서 여우길의 가치는 단순한 생존을 넘어, 상대가 거점에 접근조차 못하게 막는 사실상의 거점 봉쇄 카드입니다.
크레이지라쿤은 99%에 도달한 상태에서 5개의 궁극기를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해설진이 라쿤의 승리를 이미 기정사실로 말할 만한 상황이었고, 저도 솔직히 여기서 게임이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제타디비전이 노린 건 딱 하나였습니다. 여우길이 올라가기 전에 키리코를 제거하는 것. 바이올렛 선수가 정보를 따며 키리코 위치를 확인하고, 나이프 선수가 키리코에게 스킬을 모두 뽑아냈으며, 프로포 선수가 침착하게 마무리하면서 거짓말처럼 여우길이 캔슬됩니다. 저는 이 장면에서 진짜 소리를 질렀습니다.
이후 크레이지라쿤은 3라운드에서도 비슷한 구조로 유리한 상황을 만들었습니다. 스노우볼링(Snowballing), 즉 초반 이득을 점차 불려 돌이킬 수 없는 격차로 만드는 운영에서도 라쿤이 앞서 있었습니다. 그러나 비질란테 선수의 여우길 위치 선택이 나이프 선수의 수류탄에 튕기면서 제대로 깔리지 않았고, 거점 게이지를 99%까지 끌어올리지 못한 채 교전에서 이탈하게 됩니다. 한 번의 여우길 위치 실수가 그 모든 유리함을 지워버린 셈입니다.
이 세트는 오버워치 e스포츠 역사에서도 보기 드문 역전 사례로 남을 것 같습니다. 국제 e스포츠 연맹(IESF)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오버워치는 글로벌 e스포츠 종목 중 전략 다양성이 가장 높은 편에 속하며, 궁극기 관리와 타이밍 결정이 승패를 가르는 핵심 변수로 분석됩니다(출처: IESF).
챔피언스클래시 전망과 바이올렛이라는 변수
결국 제타디비전이 3대 3 균형을 맞추고 7세트에서 최종 승리를 가져가면서 아시아 우승을 달성했습니다. 크레이지라쿤은 6세트 오아시스에서 디바 밴이라는 초강수를 소모한 탓에 7세트에서 유효한 카드가 줄었고, 2층 구도에서 디바에게 끌려다니다 패배합니다. 밴 피킹(Ban-Picking)이란 팀이 특정 영웅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금지시키는 전략적 선택으로, 한 세트에서 밴 카드를 과소비하면 이후 세트에서 전략 폭이 좁아지는 리스크가 생깁니다. 이 부분은 제 생각에도 라쿤이 아쉬웠던 지점입니다.
제가 오랫동안 오버워치 경기를 봐온 입장에서, 바이올렛 선수는 정말 기복이 없습니다. 힐러 포지션 중에서 가장 꾸준하다는 인상을 오래전부터 받아왔는데 이번 경기에서도 그게 고스란히 드러났습니다. 거짓말 같은 핑퐁 홀딩, 뒤를 노리는 암살 루트 개척까지. 오랜 프로 경력이 이런 위기 상황에서 단단함으로 나타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제 두 팀은 챔피언스클래시에서 다시 만납니다. 이번엔 한국, 유럽, 북미, 중국 팀들까지 모두 합류하는 국제전입니다. 오버워치 리그 전문 미디어 Dot Esports는 아시아 지역 팀들의 전술 다양성과 궁극기 관리 수준이 타 지역 대비 현저히 높다는 분석을 내놓은 바 있습니다(출처: Dot Esports). 제타디비전이 이번에 보여준 포킹 조합의 유연한 활용과 극한 상황에서의 판단력은 국제 무대에서도 충분한 경쟁력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찜찜한 게 있습니다. 제타디비전, 이번 시즌 21승 2패를 했는데도 결국 Z3TA라는 말이 또 나오더라고요. 아시아는 이겼지만 뭔가 3이라는 숫자가 꼬리를 물고 따라다니는 느낌이 챔피언스클래시에서는 제발 없었으면 합니다.
두 팀 모두 결승에서 정말 좋은 경기를 보여줬고, 이런 경기가 있어야 오버워치 e스포츠가 계속 살아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챔피언스클래시에서의 맞대결이 벌써부터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