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블리자드가 공식 홈페이지에 "신규 영웅을 밴하지 말아달라"는 글을 올릴 정도면 얼마나 심각한 상황일까요? 오버워치2에 등장한 신규 지원가 '제노'가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저도 처음엔 "그냥 사기 영웅이라 밴하는 거 아니야?"라고 생각했는데, 직접 북미 서버에 들어가서 플레이해보고 나니 이게 단순히 밸런스 문제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양 팀 모두를 빡치게 만드는 독특한 구조

제노라는 영웅의 가장 큰 문제는 아군과 적군 모두에게 불쾌한 경험을 준다는 점입니다. 여기서 '불쾌한 경험(Frustrating Experience)'이란 게임 내에서 플레이어가 자신의 실력과 무관하게 일방적으로 당하거나, 팀원의 잘못된 플레이로 인해 피해를 받는 상황을 의미합니다.

상대 입장에서는 제노가 무한 비행을 이용해 위에서 몰래 접근해 킬을 따고 유유히 도망가거나, 궁극기로 낙사를 당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파라, 에코, 메르시 같은 비행 영웅을 주로 플레이하던 사람들 입장에서는 이게 특히 더 불쾌합니다. 다른 영웅들은 연료 게이지나 쿨타임이라는 명확한 제약이 있어서 그 틈을 노릴 수 있는데, 제노는 그런 제약 자체가 없으니까요.

더 심각한 건 아군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제노 유저가 이상한 위치에 아군을 내려놓아서 죽게 만들거나, 힐은 안 주고 킬만 따러 다니다가 혼자 죽는 경우가 부지기수입니다. 제노의 특성인 '팔 키우기'와 '고로롱'은 암살에 특화된 능력치인데, 이걸 가지고도 뒷라인에서 힐만 한다면 차라리 메르시를 쓰는 게 훨씬 낫습니다. 저도 실제로 북미 서버에서 플레이하면서 "이 캐릭터는 힐러로 픽했는데 딜러처럼 움직여야 효율이 나오네?"라는 걸 체감했습니다.

한국 유저의 외침이 북미로 향한 이유

오버워치 커뮤니티에서는 오래전부터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똥이 더럽다고 치워달라고 백 번 소리치는 것보다, 그걸 퍼다가 안방에 뿌려버리는 게 가장 효과 좋은 방법이다." 실제로 블리자드의 밸런스 패치 히스토리(Balance Patch History)를 보면 이런 경향이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여기서 밸런스 패치란 게임 내 영웅들의 능력치를 조정하여 공정한 경쟁 환경을 만드는 업데이트를 뜻합니다.

과거 윈스턴이 한국 서버에서 6위까지 떨어지며 몇 달간 방치되었던 사례를 기억하시나요? 당시 한국 유저들이 아무리 패치를 요구해도 블리자드는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북미 서버에 한국 유저들이 대거 유입되어 윈스턴으로 학살극을 벌이기 시작하자, 단 한 달 만에 하향 너프가 이루어졌습니다(출처: Blizzard Entertainment). 한국 서버는 전체 유저의 약 4%에 불과하기 때문에, 아무리 목소리를 높여도 북미 커뮤니티가 움직이지 않으면 개발진의 귀에 들리지 않는다는 걸 배운 셈이죠.

저 역시 이번 제노 사태를 겪으며 "게임은 이기려고 하는 게 아니라 상대를 빡치게 하려고 하는 거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북미 서버에 접속해서 제노로만 플레이하며 불쾌함을 전파하는 작업에 동참했고, 단 한 판도 지지 않고 승리를 이어갔습니다.

무한 비행이라는 치명적 설계 결함

제노의 가장 큰 문제는 역시 무한 비행입니다. 일리아리, 우양 같은 영웅들도 강력했지만, 최소한 지상에 머무는 시간이 있었고 그 순간을 노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노는 말 그대로 내려올 이유가 없습니다.

저는 북미 서버에서 제노를 플레이하며 벽을 타고 올라가 적진 후방에 침투하고, 킬을 따고, 다시 공중으로 빠져나가는 패턴을 무한 반복했습니다. 상대는 제 위치를 특정하기도 어렵고, 특정해도 잡기가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DPS(초당 피해량)가 높은 캐릭터로 대응하려 해도, 제노는 이미 다른 위치로 이동한 뒤였으니까요.

일반적으로 비행 영웅은 연료라는 리소스 관리가 핵심 메커니즘인데, 제노는 이 제약을 완전히 무시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무한 비행 기능을 지상 10센티미터 내외로 제한하고, 비행 시간을 15초 정도로 조정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봅니다. 아니면 최소한 공중에서 계속 머물 때 서서히 고도가 낮아지게 만들어야 합니다.

 

블리자드의 초고속 너프와 북미 커뮤니티의 힘

북미 서버에 한국 유저들이 제노로 침공을 시작하자, 블리자드의 반응 속도는 놀라울 정도였습니다. 제노의 암살 능력을 가능하게 했던 핵심 특성 두 개와 기동성이 곧바로 하향 조정되었습니다. 한국 서버에서 몇 달간 요구해도 꿈쩍 안 하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태도였죠.

북미 커뮤니티가 "재미없다"고 판단한 순간, 블리자드는 움직였습니다. 재미있는 건 북미 유저들은 제노가 사기라서 밴한 게 아니라 "재미없어서" 밴했다는 점입니다. 이게 바로 게임 디자인에서 말하는 '건강하지 못한 메타(Unhealthy Meta)'의 전형적인 사례입니다. 여기서 메타란 특정 시점에서 가장 효율적이라고 여겨지는 전략이나 영웅 조합을 의미하는데, 제노는 효율적이기는 하지만 플레이하는 모든 사람에게 부정적인 경험을 준다는 점에서 문제가 되었습니다.

저 역시 제노로 북미 서버를 돌며 "이 캐릭터 스킬셋이 그냥 다가가서 죽이고 빠지면 되는 구조구나"라는 걸 체감했습니다. 이건 실력의 문제가 아니라 설계 자체의 문제였습니다. 일부에서는 "제노가 나오고 게임이 재밌어졌다"는 의견도 있지만, 실제로 써보면 상대를 일방적으로 학살하는 재미일 뿐 건강한 경쟁의 재미는 아니었습니다.

지금은 너프가 이루어졌지만, 이번 사태가 남긴 교훈은 명확합니다. 게임사가 특정 지역 커뮤니티의 목소리만 우선시한다면, 글로벌 서비스로서의 신뢰를 잃을 수밖에 없다는 것. 그리고 때로는 직접 행동으로 보여주는 게 수백 개의 포스팅보다 효과적이라는 것. 제노 사태는 단순한 밸런스 논란을 넘어, 글로벌 게임 커뮤니티의 힘의 균형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든 사건이었습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ZMld-eRohoA